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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MAHOLIC/시크릿 가든

'시크릿가든'에 나온 장미꽃의 상징성에 대해

1857년 출판된 프랑스 시인 찰스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의 '악마의 꽃(Les Fleurs du mal - The Flowers of Evil)'에서 등장한 상징주의는 오늘날 문학뿐만 아니라 미술, 음악, 영화 등 모든 예술 영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 '상징주의'에서는 작가는 자신의 의도를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간접적인 상징으로 절대적인 진실을 추구해야한다고 강조하면서, '리얼리즘(사실주의)'에 반발하면서 등장하였습니다.

드라마 '시크릿가든'에서도 현실과 환상속을 오가면서 '사랑'이라는 작가적 진실을 표현하기 위한 상징으로 '새빨간 장미'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김은숙 작가가 준 힌트인 아영의 첫번째와 두번째 꿈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 장미를 예술적 상징주의를 바탕으로 분석해 보았습니다.

ⓒCengiz.uskuplu


시크릿 가든과 장미와의 관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시크릿 가든' 즉 '비밀의 화원'은 1910년 프란시스 호지슨 버넷(Frances Hodgson Burnett)여사가 쓴 소설입니다.(아...물론 음악하는 '시크릿 가든'도 유명하지요? ^^) 

이 소설 내용은 인도에서 콜레라로 부모를 여윈 소녀 메리 레녹스(Mary Lennox)가 영국의 고모부집에서 살게 되면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늘 잠겨있는 비밀의 화원을 개똥지빠귀새(Robin)가 우연히 찾아준 열쇠를 가지고 문을 열게 됩니다. 친구 딕콘(Dickon)와 사촌 콜린(Colin)과 함께 황폐해진 화원을 다시 가꾸어 가면서 건강을 회복하고, 아내를 잃은 슬픔에 화원을 잠궈 버린 고모부가 다시 돌아와 행복해 진다는 이야기입니다.

소설 '비밀의 화원' 초판 커버


그런데 이 정원의 이름이 '시크릿(비밀)'인 이유는 바로 '장미꽃'에 있습니다.
로마시대부터 비밀스런 회의를 할때면 문앞에다 장미를 놓아두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장미아래서(Under the rose)'라는 관용어구는 '비밀을 지키다'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비밀의 화원'이라는 작품에서도 장미는 아무도 돌보지 않은 황폐해진 정원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아 꽃으로 묘사되어 있고, 숨겨진 비밀- 정원이 버려진 이유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상징주의적인 관점에서, 김은숙 작가가 드라마 제목을 '시크릿 가든'이라고 지었을때, 이미 장미꽃은 반드시 작품속에 등장해야만 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로 결정되어진 것입니다.    

물거품과 장미와의 관계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서 라임이 주원을 위해 동화 '인어공주'처럼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겠다고 할때, 수많은 시청자를 슬프게 했습니다. 그리고 주원 역시 혼수상태에 빠진 라임을 살리기 위해 영혼체인지를 통해 자신이 물거품처럼 사라질려고 했을때, 시청자들은 결국 참았던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두번째 꿈에서 아버지를 만나, 떨어지는 장미꽃잎 속에서 꽃술을 마신후 깨어난 라임은 이전의 늘 죄송하다며 고개 숙이던 가난한 여자가 아닙니다. 라임은 가장 소중한 것마저 희생해서 자신을 살리려고 했던 주원을 더 이상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는 마음을 넘어, 분홍여사에게 주원을 행복하게 해 주겠다며 아들을 달라고 당당히 이야기하는 여자로 다시 태어납니다.

'장미'라는 상징으로 해석하면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라임은 물에 떠오른 거품에서 태어난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상징할 수 있습니다.

아프로디테의 탄생

아프로디테(Aphrodite)의 그리스 어원은 '물에 떠오른 거품(foam)'에서 유래하는데, 그리스 로마신화에서는 미와 사랑의 여신인 아프로디테가 사이프러스 파포스(Paphos)의 바다 거품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여신이 태어날때 손을 장미를 들고 있어다는 전설도 있고, 올림푸스의 신들이 아프로디테를 위해 장미를 만들었다는 전설도 있습니다. 

서양문학에서는 2900여년동안 '장미'는 아프로디테의 상징으로, 절대적인 미와 사랑을 상징합니다. 즉, 사회적, 계급적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는 라임은 인어공주의 거품처럼 사라질려고 했지만, 아버지의 마법으로 주원과 몸을 바뀌면서 미와 사랑의 여신인 아프로디테로 재탄생합니다. 
라임의 새로운 삶을 축하하기 위해 라임 아버지는 올림푸스산의 신들이 아프로디테에게 한 것처럼 장미꽃을 하늘에서 내려준 것이지요. 이제 여신으로 태어난 라임은 더이상 머리숙이고 눈물을 흘리는 일없이 사랑받고 살아야겠지요?

빨간 장미의 상징은 해피엔딩

초기 기독교에서는 장미가 그리스 여신 '아프로디테'와 로마의 여신 '비너스'를 상징한다고 하여 금기시하였습니다. 그러나 장미의 다섯개 꽃받침대를 그리스도의 상처로 인식하고 예수의 희생으로 해석하다, 중세시대에는 성모 마리아를 지칭한다고 믿으면서 절대적인 '불멸의 사랑'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몇몇 기독교 종파에서는 빨간 장미는 묘지에서 자라지 않는다고 믿었습니다.
이러한 기독교적인 상징으로 해석하면 처음 꿈에서 라임의 아버지가 들고 있던 빨간 장미는 주원과 라임이 죽지 않고 사랑을 완성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장미가 비밀을 상징한다면 '시크릿 가든'은 비밀이 논의되고 해결되어지는 곳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마지막 비밀(해결)장소는 김주원이 수수께끼를 풀어야(기억을 되찾아야) 할 '엘리베이터'가 될 것입니다.

비록 시청자들의 놀라운 상상력과 추리력으로 여러가지 결말을 만들었지만, 저는 시크릿가든의 김은숙 작가가 처음부터 '해피엔딩'이라는 결론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전개시켰고, '장미꽃'이라는 상징으로 복선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문제가 해결되는 장소마저도 제시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글을 마치며

진부한 신데렐라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로맨틱 코미디 '시크릿 가든'을 식상하지 않게 만든 김은숙 작가 덕분에 지난 두달 동안 주말을 기다린 많은 시청자들이 있었습니다. 정많고 눈물많은 시청자들은 혹시 새드엔딩이 될까봐 노심초사하며 드라마를 시청하였을 겁니다. 

대부분 작가들은 한편의 작품을 쓰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자료를 조사하고, 효과적으로 작품의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상징을 이용합니다. 영문학에서는 글을 쓴다는 사람들은 '상징어 사전(symbolism dictionary)'을 사용하는데, 이런 상징들을 통해보면 김은숙 작가도 엄청난 사전조사를 통하여 작품을 구상한 것 같습니다. 즉, 상징주의적인 관점에서 살펴보면, 이 드라마의 가장 중요한 열쇠인 장미는 드라마 시작부터 이미 결정되어 복선으로 라임의 재탄생을 통한 해피엔딩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지난 글(☞ 로맨틱 코미디 영화로 파헤쳐본 '시크릿 가든')에서 이 드라마를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상 구조로 분석해보고, 이번에는 '장미'라는 상징으로 분석해 보면서 이 드라마의 작가와 연출자의 뛰어난 예술적 능력과 재치에 다시 한번 놀랐습니다. 이 글을 작성하면서 작가와 연출자, 그리고 배우와 스텝들의 힘든 노력의 결과물을 제가 안방에서 편하게 시청하고, 너무나 쉽게 평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장미꽃에 대한 이야기를 쓰다보니 누군가 저에게 드라마에서처럼 빨간 장미꽃을 비처럼 내려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드는군요.ㅎㅎ

그러나, 남편의 분위기 망치는 멘트...
장미꽃 뿌려주는 이벤트로 사람 죽을 수 있다고 하네요.ㅠ.ㅠ
(서기 218년부터 222년까지 재위했던 로마황제 엘라가발루스는 만찬 초대객들에게 지나치게 많은 장미꽃을 퍼부어댔기 때문에 몇 사람을 질식해 죽였고, 그 일로 할머니의 명령으로 황제에서 폐위되어 피네르강에 던져져 죽었다고 합니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화를 불러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