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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MAHOLIC/시크릿 가든

로맨틱 코미디 영화로 파헤쳐본 '시크릿 가든'

로맨틱 코미디의 상징인 된 영화배우 휴 그랜트에 따르면 그는 한해동안 로맨틱 코미디만 100편 이상의 대본을 받는다고 합니다. 초기에는 로맨틱 코미디가 산업화로 인한 다양한 계층과 자유연애를 배경으로 하다가 이후 프로이드의 심리학과 결합되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하였다고 합니다. 비현실적인 설정으로 욕을 먹으면서도 거의 90여년 동안을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이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는 기존 로맨틱 코미디 작품에서 조금씩 차별화된 요소를 첨가하면서 발전하고 있습니다. 

제가 요즘 좋아하는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인 '시크릿 가든'을 보면서 김은숙 작가와 신우철 피디가 어떻게 전통적인 요소를 변주하여 로맨틱 코미디를 만들어 가는지 궁금하더군요. 아시다시피 이 드라마에서는 종종 기존 로맨틱 코미디를 비꼬기도 하고, 패러디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로맨틱 코미디의 달콤함을 그대로 사용하기도 하지요. 그래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가지고 이 드라마가 어떠한 공통점과 차이점을 가지는지 한번 살펴 보았습니다. 더불어 최근 불거진 시크릿 가든의 표절시비 문제도 언급하려고 합니다.


'시크릿 가든' 은 진부한 설정들의 종합판?

사실 로맨틱 코미디의 구조는 매우 단순합니다. 남녀 주인공이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상대방과의 어떤 차이점으로 갈등하고 두 주인공들에게 공동으로 협력해야만 해결될 문제가 발생합니다. 물과 기름처럼 절대로 화합할 수 없던 두 사람은 이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결국 사랑에 빠진다는 기본 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경쟁자들이 끼여들어 삼각, 사각관계를 만들어 내기도 하지만, 가장 기초적인 뼈대는 결국 남녀 주인공의 갈등입니다. 시크릿 가든에서도 마찬가지로 두 주인공인 주원과 라임의 사회 계층적 차이가 만들어내는 갈등이 가장 큽니다. 거기다 아직 정확하게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영혼이 바뀌어야만 해결되는 어떤 이유(사고든 병이든 간에)를 두 사람이 함께 해결함으로써 결국 사랑에 빠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전통적인 로맨틱 코미디 작품들은 남자가 혹은 여자가 신데렐라가 되는 구성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로맨틱 코미디 영화 중에서 최고의 흥행수입을 자랑하는 '귀여운 여인(Pretty Woman, 1990)'에서는 영화사상 가장 큰 사회경제적 계급차이를 보여줍니다. 점차 여성의 사회적 계급이 향상되면서 경제적 차이로 인한 갈등보다 프로이드의 심리학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 등장하는데, 1989년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때(When Harry met Sally)'가 그 대표적인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여자 주인공 샐리(맥라이언)가 여자들이 가짜 성적 흥분이 가능하다고 말하면서 직접 시연까지 해보입니다.(옆 테이블에 앉았던 여자가 샐리와 같은 메뉴로 달라고 주문하는 장면은 지금봐도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전자충격으로 여자의 속마음을 알게되는 멜깁슨의 '왓 위민 원트(What Women Want, 2000)'에서 새롭게 판타지를 첨가하여 여성과 남성의 차이를 보여주었습니다. 이런 심리학적 접근을 바탕으로한 로맨틱 코미디에서는 '남녀간의 영혼체인지' 역시 종종 진부한 설정으로 평가됩니다. 우리나라 영화 '체인지'를 비롯 '스위치', '보이 걸 씽', '핫 칙' 같은 영화들이 그 예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시크릿 가든의 '영혼체인지'는 기존 로맨틱 코미디의 설정을 가져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소한 트레이닝복 하나도 남들과 차별화된 걸 원하는 재벌 주원이 영혼이 바뀌면서 사회적 하층민인 라임의 상황을 실제 체험하여 알게 된다는 점에서 주원과 라임의 관계를 '귀여운 여인'과 '왓 위민 원트'가 결합된 형태와 유사하다는 생각했습니다. 특히 '귀여운 여인'에서 갑부 리처드기어는 고소공포증을 가지고 있고, 드라마에서는 재벌남 주원은 폐소공포증을 가지고 있다 점에서 유사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영혼이 바뀐 주원이 브래지어를 착용하는 장면에서 '왓 위민 원트'에서 멜깁슨이 여자의 마음을 알기위해 다리제모도 해보고 스타킹도 신어보던 모습이 연상되더군요.


드라마속 오스카와 라임의 관계에서는 영화 '노팅힐'의 스타 배우인 줄리아 로버츠와 일반인 휴 그랜트와 만남이 생각났습니다. 영화 노팅힐을 만든 감독의 이야기에 따르면 친구들과 저녁 식사를 하던 중 한 친구가 영화감독이면 유명한 스타들을 많이 만나겠다고 하면서 갑자기 "지금 줄리아 로버츠가 나타난다면 우린 어떻게 해야 하지?"라고 한 말이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합니다. 영혼이 바뀐 관계로 좀 어색했지만, 자신의 좋아하는 스타를 만나 라임이 직접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는 것을 보고 어렴풋이 요즘 팬클럽에서 왜 도시락을 선물하는지 이해가 되더군요.^^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타임즈(Modern Times, 1956)'에서 보여진 초기 산업주의에서는 포드시스템으로 상품과 서비스가 대량 생산되어집니다. 하지만 영화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Music and Lyrics, 2007)'에서 그려진 현대 후기 산업주의사회(Post Modernism)에서는 가장 창의적이라 여겨지는 예술분야조차도 한 명의 예술가가 만들어 내는 순수한 작가주의는 사라지고 분업에 따라 생산되어지는 것을 보여줍니다. 결국 완전히 새로운 창작은 사라지고 장르적인 틀속에서 작품은 재구성될 뿐입니다. 다양한 패러디와 패스티쉬를 사용하고 있는 '시크릿 가든'의 설정들은 결국 로맨틱 코미디 장르가 가지는 특징이자 포스트모더니즘 예술이 가지는 일반적인 시류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사실 현대 예술을 계속 미분하다 보면 결국은 진부한 설정과 구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진부함을 새롭게하는 '첨단' 로맨틱 코미디의 요소 

로맨틱 코미디는 '스크루볼 코미디(Screwball Comedy)'라고 불리면서 신데렐라를 모티브로 하여 계급적 차이를 뛰어 넘은 사랑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보다 점차 남녀간의 차이에 대해 발전하였고 다른 장르의 요소까지 첨가하면서 진부함을 벗어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1983년 설립된 영국의 워킹 타이틀 영화사(Working Title Firms)는 로맨틱 코미디의 장르적 진부함을 뛰어넘는 새로운 기법들을 개발하는 회사로 유명한데, 부자대신 미디어 사회에 새롭게 떠오른 스타를 등장시킨 '노팅힐'로 큰 수익을 얻은 뒤, 미혼의 노처녀 이야기 '브리짓 존스의 일기(Bridget Jones's Diary, 2001)'로 세계적인 히트상품을 만듭니다.

그 후 이 영화사는 주인공의 성격이나 신분에서 오는 차이보다 음악적 요소를 강조한 '러브 액츄어리(Love Acturally, 2003)'을 발표합니다.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된 이 영화에서 각각의 이야기들은 고유한 사운드 트랙으로 표현하는 뮤직비디오 형식을 차용해 왔다고 합니다.(개인적으로는 이 영화에 나왔던 노래들을 모두 좋아합니다.^^)


그 뒤 다른 제작사에서도 새로운 시도를 하는데, 그 예로 만나서 사랑에 빠지는 과정과 반대로 헤어지면서 사랑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이별후애(Break up, 2007)'와 임신한 후 사랑에 빠지는 '사고친후(Knocked up, 2008)'가 있습니다. 또한 새로운 소재로 사실적인 패션 사업의 명암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The devil wears Prada, 2006)'와 화려한 액션이 첨가된 '미스터 앤 미세스 스미스(Mr. and Mrs. Smith. 2005)는 첫 액션 로맨틱 코미디라고 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볼때 시크릿 가든의 라임이 보여주고 있는 액션과 스턴트는 로맨틱 코미디의 새로운 시도와 맞물려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시크릿 가든의 차별화된 요소들

기존 로맨틱 코미디의 경제적 차이는 분명 주원과 라임의 관계에서도 나타납니다  그러나 부의 차이는 사랑한다면 다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남녀 주인공이 가지는 핵심적인 갈등입니다. 더욱이 부자인 주원에게는 설득력있는 논리가 있습니다. 가난하게 태어난 것이 죄가 아니듯 부자로 태어난 것도 죄가 아니겠지요. 하지만 작가는 인어공주를 통해 사람의 출생배경이 그 사람의 인생 전부를 결정짓는 안타까운 현실을 보여줍니다. 더욱이 빈부간의 차이가 영혼이 바뀌어야만 이해될 정도로 깊은 골이 있다는 사실도 보여줍니다. 시크릿 가든에서 나타난 어두운 사회의 단면이 사랑이라는 요소로 어떻게 해결될 지 궁금해 집니다. 

시크릿 가든에는 기존의 로맨틱 코미디에 대한 풍자(패러디)가 곳곳에 숨겨져 있습니다. 주로 김은숙 작가의 최고 히트작인 '파리의 연인'을 웃음의 코드로 사용하는데, '내안에 너있다', '백화점의 연인'같은 표현들은 작가 스스로가 자신을 뛰어 넘겠다는 의지를 보여줍니다. 드라마에서 재벌집 마나님이 아들에게 붙은(?) 가난한 여자를 떼어내기 위해 자주 사용하는 '돈봉투 내밀기'와 '얼굴에 물 붓기'를 웃음을 주는 반전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머리 감고 나타난 라임의 모습과 카푸치노 먹다 라임의 입술에 묻은 거품에서도 작가의 유쾌한 재치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이런 기존의 로맨틱 코미디를 꼬집고 풍자해보는 것 외에 달콤한 로맨틱 코미디의 특징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데, 백화점에서 촬영중 '백기사로 등장한 주원'이나 윗몸일으키기를 하면서 했던 '눈빛키스', 라임의 대문앞에서 했던 따뜻한 포옹장면은 너무 좋더군요. 이런 맛에 이런 로맨틱 코미디를 보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최근의 로맨틱 코미디에서 보면 착하고 청순가련한 여자 주인공에서 이미 탈피했고 오히려 샌드라 블록의 '프로포즈(The Proposal, 2009)'처럼 까탈스럽고 비호감의 성격이 많기 때문에 라임의 당당함은 그리 새롭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액션배우라는 라인의 직업이 소위 말하는 '착한 몸매와 예쁜 얼굴'을 가진 기존의 여주인공과 차별되는 점입니다. 라임과 같은 '멋있는 여자'와 사랑에 빠진 남자의 이야기는 기존의 로맨틱 코미디보다 훨씬 더 설득력있는 설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을 마치며

얼마전  김은숙 작가의 '시크릿 가든'과 황미나 작가의 '보톡스'간의 표절시비에 관한 기사를 보았습니다. 제가 보톡스를 보지 않은 관계로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는 어렵겠지만, 포스트 모더니즘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본다면 시크릿 가든은 표절이 아니라 기존의 로맨틱 코미디에서 사용된 설정들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도와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봐야할 것입니다.

글을 준비하면서 로맨틱 코미디를 발전시키려는 새로운 시도와 기법들을 알게 되어 개인적으로는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잠든 후에 하루에 한편씩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보면서 달콤함과 웃음을 즐겼습니다. 저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 중 '러브 액츄어리'를 제일 좋아합니다. 아마 공항에서 누군가를 기다려본 기억 때문인가 봅니다.^^
현실에 대한 대리만족이라서 싫어하시는 분들도 많겠지만, 추운 겨울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핫초코 같은 로맨틱 코미디 영화 한편 어떠실런지요?


※ 모든 캡쳐장면의 저작권은 해당방송사와 영화사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