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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N APPETIT

향수병을 달래주는 고향음식

이렇게 한국을 떠나 멀리 나와있으면 1년에 한번쯤은 꼭꼭 향수병을 하는 것 같네요.
(갑자기 왠 높임말? 이제 맨날 혼자서 놀던 블로그에서 이웃블로거님들도 찾아주시니 건방지지 않게 말투부터 좀 달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
몇 일전 친정 엄마가 편찮으시다는 전화를 받고, 한차례 엉엉 울고나니 한국에 너무 가고 싶어졌어요.
멀리 떨어져 있으니 가족들이 너무 보고싶고,
한국에서 손쉽게 먹던 음식들도 그립고,
매일같이 거닐던 길도, 자주가던 장소들도 모두 모두 그립네요.
이럴땐 미친듯이 한국 드라마, 방송들 찾아보기도 하고, 옛날 사진들 들쳐보기도 하고 그러지요.
어떤 때에는 한국가면 반드시 먹을 음식 리스트를 짜기도 합니다.ㅋㅋ
1번 짜장, 짬뽕, 탕수육 시켜먹기
2번 아구찜 사먹기....뭐 이런식으로 말이죠.
그래서 이번엔 리스트 적는 것에 그치지 않고 추억이 담긴 고향 음식을 직접 해먹기로 했답니다.^^

아는 분은 아시겠지만, 제 고향은 부산이랍니다.
결혼전까지 30년 이상을 쭉~부산에서만 살아온 부산 토박이지요.
제가 부산을 떠나 이렇게 국제적(?)으로 놀게 될지는 꿈에도 생각을 못했답니다.
남편과 연애시절 부산 곳곳을 다 찾아다니며 식도락을 즐겼답니다.
연애기간이 좀 긴 편이라 둘이서 안가본 곳 없이 다 찾아다니며 먹고 그랬는데,
요즘도 여전히 둘이서 어디 어디가 맛있었다, 뭐가 먹고 싶다...이런 이야기들로 시간을 보낼 때가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기억남는 음식이 바로 '돼지국밥'이랍니다.

부산, 경남지역 분들은 아주 친숙하겠지만,
다른 지방 분들은 이 돼지국밥의 존재를 모르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저는 '순대국밥'이란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어 비교하긴 뭐하지만,
들은 이야기로만 생각해봤을때 비슷할 것 같기도 합니다.
쉽게 말해 돼지국밥은 돼지뼈를 푹 고아서 먹는 일종의 사골국이지요.

남편과 저는 같은 학교, 같은 과를 다녔지요.
저희가 다니던 학교 앞에 아주 유명한 돼지국밥 골목이 있었답니다.(아마 지금도 존재하리라 믿습니다)
2천원이면 따끈한 돼지국밥을 배불리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돼지국밥 골목에 들어서면 조금은 역한(?) 냄새가 진동을 합니다.
처음엔 그 냄새때문에 절대 저 것은 사람이 먹을 만한 음식이 아니다...라고 단정지었을 정도지요.
그런데, 이러던 제가 돼지국밥을 동기들, 선배들 손에 이끌려 반강제로 먹고 난 후
나중엔 스스로 찾아먹는 신공(?)까지 보이게 되었답니다.
(저희 시어머니께서 제가 이 돼지국밥 잘 먹는다는 소리를 들으시곤, 어찌 그런 냄새나는 것을 먹을 수 있냐며 외계인 취급하실 정도...ㅎㅎ)
제가 나온 과엔 남학생이 대부분이라 맨날 술마신 다음날 해장국으로 이 돼지국밥을 먹으러 끌려다니던 기억이 나네요.ㅎㅎ
땀을 뻘뻘 흘리며 먹는 돼지국밥 한 그릇이면 해장도 해장이지만,
일종의 돈없는 가난한 학생들이 몸보신 할 수 있는 보양식이었답니다.
이 돼지국밥도 남편과 저의 음식리스트에 항상 올라가는 품목입니다.

서론이 너무 길었네요.^^;;
그때 그 시절 돼지국밥 먹으며 사진같은 걸 찍었을리 절대 없지요.^^;;
비교할 사진이 없는 관계로 그냥 제가 만든 돼지국밥을 소개할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돼지국밥...


일단 여기서는 한국음식에 딱 맞는 재료를 구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그냥 울 동네 그로서리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만들어 보았답니다.
여기서 파는 돼지뼈라고는 이 목뼈가 다 네요.
원래 돼지국밥엔 아마 이 목뼈 뿐만 아니라 사골처럼 각종 뼈들이 다 들어갈 터인데,
뭐...그래도 목뼈에서 국물이 충분히 우려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로서리에서 산 돼지 목뼈...한 5불 정도됩니다.

먼저 돼지뼈는 찬물에 담궈 핏물을 빼줘야겠지요?
저는 아침 일찍 아들내미 라이드 나가기전에 담궜다가 학교마치고 돌아와서 끓이기 시작했으니 한 6시간쯤 담궈뒀던 것 같네요. ^^;;
보통은 2-3시간이면 가능할 듯 싶어요.(사진으로 보니 좀 징그럽네요.ㅠㅠ)

한번 부글부글 끓여준 뒤 그 물을 버리시고,

보통 돼지고기 수육할때 들어가는 향신재료들(파, 양파, 마늘, 생강, 통후추 등)을 넣어줍니다.
뽀얀 국물을 위해서 수육할때 제가 쓰는 재료 중 된장, 인스턴트 커피는 생략했답니다.

이제 푹~고우는 일만 남았네요.
물을 넉넉하게 붓고 한 2-3시간 푹~고와주세요.
수시로 기름기를 걷어내야 하지요.

자~자~  돼지국밥엔 반드시 부추무침(일명 전구지 무침)이 있어야 됩니다.
부추무침 없는 돼지국밥은 앙꼬없는 찐빵과 같죠.^^
냉동실에 얼려둔 김치양념을 꺼내 무쳐내고,
또 새우젓은 필수, 그리고 고추가루, 마늘, 생강(생강술), 국간장, 멸치액젓, 다진 고추, 다진 파, 후추를 넣은 양념 다데기로 따로 준비했답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돼지고기를 삶아 얇게 썰어 국밥위에 올려야 완벽해지는데 그러질 못했네요.
이제 돼지국밥에 부추무침 넣고(반드시 넣어 먹어야 제 맛),
양념 다데기와 새우젓으로 간해서 후루룩 먹어주면 됩니다.
그리고 제가 다녔던 돼지국밥집에선 저렇게 풋고추를 따로 찬으로 내줬는데,
돼지국밥과 함께 쌈장에 찍어 먹는 풋고추 맛도 일품이랍니다. 

땀을 흘려며 한 그릇 말아먹고 나니 포만감이 장난 아닙니다.
역시 사람은 배가 부르니 아무 생각이 안납니다.^^;;
향수병때문에 우울했던 마음들...이 돼지국밥 한 그릇으로 싹~가시는군요.ㅎㅎ

이상 돼지국밥 한 그릇으로 향수병 날려버린 아주 단순한 칼촌댁이었습니다.